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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촌칼럼 : 명목과 실질 - 박상덕 원장2007-07-02 11:10:07


  

다음 기사는 6월 28일(목) 전기신문에 게재 되었습니다.

 


[호수면 : 제2300호 16면]

명목과 실질


세월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명칭에 관한 것이다. 굳이 의미론이라는 학문을 들추지 않더라도 명칭이 우리에게 주는 선입관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명칭을 둘러싼 갈등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적인 백과사전인 브리태니카 2007년판에 동해의 이름이 표기됐다고 한다. 그동안 일본해로 단독 표기되었는데,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동해를 위쪽에 일본해를 아래쪽에 병기하게 됐다는 것이다. 동해라는 이름이 1440년도에 제작된 지도에서부터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차지하고라도 한국의 동쪽이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바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에 우리나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일본해로 계속 불리어질 경우에 명목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이 크기에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는 것은 당연하며 모든 국민이 반크의 활동에 큰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요즈음의 세태 속에서는 명칭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특히, 상품 브랜드는 바로 매출과 직결되기에 브랜드 네이밍이 마케팅 학문의 중요분야로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 회사 내에는 이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전담 부서가 있으며 브랜드 개발을 둘러싼 컨설팅 업체 또한 수없이 많다. 1970년대 미국에 신성(新星)이라는 좋은 의미를 가진 노바(Nova)라는 차가 중남미 시장에서 거의 팔리지 않았다는데, 스페인어로 ‘노바’는 ‘가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잘 몰라서 명목적인 이름이 오히려 실질적인 내용에 대한 오해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지만, 반면에 실질적인 내용도 없는데 의도적으로 명목적인 이름만 뻔지르르하게 포장하려는 경우도 흔하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수도권 곳곳에서 아파트 가격을 올리기 위해 아파트 이름을 바꾸는 시도가 있다고 한다. 내용물의 변화 없이 이름만 바꾸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문제 있는 발상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마침 법원에서는 이런 저런 것을 고려해 적절한 지침을 내놓았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판단된다. 실질이 반영된 이름이 되어야지 명목상의 이름만을 바꾸려는 세태는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외국어를 번역할 때도 명목과 실질 사이에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사진이 좋은 예라고 생각된다. 카메라는 원래 바늘구멍사진기의 원리를 이용해 화가들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었다. 그러다가 1839년 프랑스의 다게르라는 사람이 화학적으로 像을 고정시키는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사진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즉, 사진은 한마디로 빛을 이용해 그린 그림이다. 그래서 영어로 Photo-graph 불어로 Photo-graphie인데 둘 다 빛(Photo)으로 그린 그림(Graph)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사진의 본질 및 특성을 잘 보여주는 명칭이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사진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빛으로 그린 것이라면 다 사진이며 외부에서 빛으로 적절하게 조작하더라도 그것은 사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쓰고 있는 사진(寫眞)이라는 명칭은 사진의 본래 특성 중 일부분만 나타내는 번역으로서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Straight Photograph 만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원 의미에 가까운 照片 또는 照相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우리는 일본을 통해 사진이 수입됐기에 일본과 같이 사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인들의 사진에 대한 인식은 있는 그대로를 옮겨 놓아야 한다는 아주 좁은 의미에 한정되어 있다. 예를 들면 포토샵과 같은 사진편집기를 이용해 조작된 사진은 사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사진 역사를 보면 풍경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이외에는 별로 발전하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있다가 1980년대에 와서야 외국에서 유학한 사진가들에 의하여 그 영역이 확장됐고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는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사진가들을 배출하게 됐다.

요즈음 이공계로의 지원이 저조하다. 특히 3D 산업과 연관이 있다고 여겨지는 학과들의 어려움이 크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학과명을 변경하는 방편을 택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개는 인기가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명칭과 복합적으로 이름을 만들어 내거나 가르치는 분야를 포장해 좋은 학과임을 나타내려고 하는데 이를 위한 노력이 눈물겨울 정도라고 한다. 물론 우리가 융합의 시대를 살고 있기에 학문 간의 융합이나 통합을 강조하기 위해 통섭적인 이름을 붙인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단지 학생들의 지원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면 앞에서 말한 아파트 값을 올리기 위하여 개명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리라. 오지 않을 학생들이 학과명 때문에 지원하게 된다고 생각이 들지도 않지만 학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서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것이 대학이 도리이리라.

전력분야에서는 몇 해 전부터 전력산업기반사업의 일환으로 인력양성사업을 통해 전기공학과를 지원해왔는데 지원을 받은 대학들의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더구나 IMF이후 한동안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않던 한국전력이 전기공학과 졸업생들의 입사를 재개한 이후에 전기공학 분야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 전력산업에서 일생을 보낸 사람으로서 안도의 숨이 나온다. 외국의 경우에도 관련 산업의 고용창출 능력이 바로 학생지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늘 목격되는 현상이다. 결국 이공계로 학생들의 지원을 높이는 방법은 이공계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이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된다. 최근 한편에서는 전력산업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래기술 선점을 위해 전력산업에 IT 및 NT를 결합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것이 자연스럽게 학생들로 하여금 전력산업의 미래를 보도록 하게하는 것이 아닐까?

전력산업의 미래는 유입되는 젊은이들에게 달려있으며 우수한 인재의 유입을 유도하는 것은 지금 전력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전력산업에 할일이 많아져서 대학이 이것 ‘같기도’ 하고 저것 ‘같기도’ 한 이름을 만드는 노력은 접어버리고 명목과 실질이 일치하는 학과명을 내걸고 가르침과 학문탐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박상덕 한국전력공사 전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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