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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7]전기차, 움직이는 ‘에너지저장장치’로 쓰는 시대 온다(한겨례)2022-03-07 10:47:39


남는 전력 활용하는 V2G기술 현실로


태양광·풍력발전 등 친환경 발전이 늘어나면 전력 생산의 ‘간헐성 문제’가 발생한다. 비가 내리는 등 날이 흐리거나 밤이 되면 태양광 발전이 어렵다. 풍력발전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전기가 생산되지 않는다. 낮 시간대나 바람이 불 때 만든 전력을 저장해뒀다가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시간에 꺼내 써야 한다. 태양광·풍력발전 비율이 높아질수록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가 필수인 이유다. 미국이나 중국 등 땅이 넓은 나라는 빈 땅에 수백·수천 대의 에너지저장장치를 설치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그럴만한 땅이 부족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그 대안으로 거론되는 제품이 있다. 바로 ‘전기자동차’다.


전기차 10만대…1GW 발전소 맞먹어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계통에 연결해 전력 수요가 높은 시간에 꺼내 쓰는 방식이다. 이를 ‘비히클 투 그리드’(Vehicle To Grid), 줄여서 브이투지(V2G)라고 한다. 전기차(비히클) 전력을 전력계통망(그리드)으로 옮긴다는 의미다. 국내에선 아이오닉5를 이용한 실증연구가 진행 중이다. 연구 총 책임자인 한전 전력연구원 박기준 수석연구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전기차 10만대가 모이면 1기가와트(GW)짜리 발전소 하나만큼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기가와트는 약 36만여 가구가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는 총 23만1천대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이해가 쉽다. 아이오닉5는 배터리 전력을 외부로 빼내 가전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비히클 투 로드’(Vehicle To Load) 기술을 적용했다. 전기차에 노트북, 전기 포트, 전기밥솥, 전기 그릴, 전자레인지 등을 꽂아 쓸 수 있다. 현대차 설명에 따르면, 아이오닉5 배터리를 완충하면 일반 가정에서 약 4일(4인 기준)간 사용할 수 있다. 서울에서 부산을 편도로 이동할 경우 반나절이면 다 써버릴 배터리 용량으로 일반 가정집에선 4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운전 중인 전기차에서 어떻게 전기를 뽑아낸다는 걸까. 박 연구원은 운전 중인 차가 아니라 주차된 차량을 말한다. 그는 “영업용 차량을 제외한 대부분의 승용차는 하루에 22∼23시간 서 있다. 이 차들을 이용하면 된다”고 했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가 의뢰한 ‘전기차를 활용한 양방향 전력 전송의 제도적 기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승용차의 주중 1일 평균 운행시간은 60.8분으로 조사됐다. 승용차는 하루 평균 23시간 주차돼 있는 셈이다.


전력 부하 최대 8% 감소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이 늘어나는 2030년에 브이투지를 이용하면 연간 피크 부하를 3~8% 줄일 수 있고, 온실가스 발생도 최대 61% 감소시킬 수 있다. 최근 여름이나 겨울철 피크 부하(90GW)의 8%면 7.2GW에 달한다. 원자력 발전소 6~7기에 해당하는 막대한 전력량이다. 박 연구원은 “국내에선 아직 명확한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서도 “낮 시간대(11시~3시)에 넘치는 태양광 발전량이나 심야시간대의 저렴한 요금에 충전했다가,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저녁 시간에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일본 등에서 전기차와 주택을 연결하는 ‘비히클 투 홈’(Vehicle To Home) 기술이 상용화되고 있다. 현지 주거 형태와 자연재해 등 요인으로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일본 닛산은 전기차 ‘리프’를 판매할 때 양방향 충전기를 함께 판다. 일본은 지진이 일어나면 전기가 끊어진다. 전기차에 저장된 전력을 비상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본 정부도 브이투지, 브이투엘 기기 구입비의 50%(최대 75만엔)를 지급하고, 충전기 설치 공사비도 최대 40만엔을 보조하고 있다.
산불이 자주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비히클 투 홈 기술이 적용된 양방향 충전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현지 당국이 강풍이 불거나 날씨가 건조할 경우 산불을 방지하기 위해 전기를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주로 캐나다 스타트업인 오시아코(Ossiaco)가 개발한 전기차 충전기가 많이 쓰이는데, 이 충전기는 가정용 태양광 시스템과 연동해 전기차를 충전하고 정전 시 전기차 배터리를 응급 전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반면 국내에선 전력 공급이 끊기는 일이 거의 없고, 아파트·빌라 등 집단 주거공간이 보편화돼 있다. 일본·미국과 달리 개별 가정이나 건물에 적용되기보다 전체 전력계통과 연결해 전력 수급 완화에 도움을 주는 것이 더 효용이 높다.


배터리 수명에 영향 없나?
잦은 충·방전으로 인해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테스트 결과 기우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났다. 전력연구원과 한국자동차연구원이 아이오닉5에 탑재되는 배터리 2개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1개는 기존 충전방식으로, 1개는 브이투지 방식을 적용해 추가적인 충·방전을 진행했다. 주행거리 33만㎞를 가정해 테스트한 결과 두 차량의 배터리 수명 차이는 약 1%에 불과했다.
그래도 차주 입장에선 개운치 않다. 내 전기차에 저장된 전력을 가져다 쓴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할 수 있다.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으면 전기차 주인들이 동참할 유인이 없다. 이런 이유로 브이투지 기술을 적용한 차주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전기요금이 저렴한 시간에 충전하고 전기요금이 오르는 시점에 전기차 에너지를 판매하는 방식이다. 실제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실증사업에서 전기차 소유주당 연간 120∼750유로의 금전적 이익을 봤다는 결과를 얻었다.
만약 브이투지가 실제 적용되면 전력을 사고파는 역할을 누가 하게 될까. 바로 ‘가상발전소 사업자’다. 현재 한국은 대규모 발전시설에서 전력을 대량 생산한 뒤 고압 송전시설을 통해 전력을 원거리로 공급하고 있다. 향후 태양광·풍력 발전소 등 비율이 늘어날수록 전력 수요지와 가까운 곳에서 소규모 발전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이때 가상발전소가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활용해 분산된 전력 소비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 뒤 해당 시점에 필요한 전력만 생산하도록 제어한다. 가상발전소 기술을 이용해 전력계통에 연결된 전기차 배터리 전력을 꺼내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테슬라는 오토비더(Autobidder)라는 에너지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차주가 차량에서 브이투지 플랫폼에 접속하면 현재 에너지 가격과 배터리에 저장해둔 전기 가격을 비교하면서 입찰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오토비더는 현재 호주·미국 등에서 실제 운영되고 있다.


“저렴한 브이투지 충전기 확대해야”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보급 목표 대수를 362만대로 잡았다. 전기차 362만대면 원자력 발전소 180여기가 1시간 동안 전력을 생산하는 수준의 전력량이다. 문승일 한국에너지공과대학 교수는 “곧 전기차 1천만 시대가 온다. 이 차량들을 일방적으로 충전만 해서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주차장에 주차돼있는 어마어마한 전기량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준 연구원도 “충전기에 연결된 전기차의 전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저렴한 브이투지 충전기를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