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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8] 한전 첫 개발 해상풍력 ‘일괄설치선’ 타 보니···(한겨레)2021-08-18 10:59:23


한전 첫 개발 해상풍력 ‘일괄설치선’ 타 보니···


- 발전기 미리 조립해 바다에서 바로 설치···공사 기간 90일→10일
- 기초 안정성은 삼각축 구조의 대형 강관으로
- 기존 산업 생태계 탓에 시장성 확보엔 시일 걸릴 듯


군산항 남방파제의 시멘트길을 끝까지 따라가 보면 방파제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바다 위로 바람개비 모양의 키 큰 해상풍력발전기 두 기가 솟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전력의 연구용 해상풍력발전기 1·2호기이다. 겉보기엔 방파제 인근에 줄줄이 서 있는 여느 풍력발전기와 다를 바 없지만, 바다 밑으로 파고 들어간 기초에서 큰 차이를 띠고 있다. ‘재킷 공법’에 따른 일반 발전기와 달리 ‘석션 공법’으로 설치됐다는 점이다.
재킷 공법은 쇠말뚝을 박아 발전기의 하부기초(재킷)를 지반에 고정하는 방식인 데 견줘, 석션 공법은 한쪽 면만 뚫린 깡통 모양의 대형 강관(버킷)을 바다 밑에 엎어놓은 뒤 펌프를 이용해 강관 안의 물을 빨아내고(석션), 이때 발생한 강관 내·외부 수압 차를 이용해 기초시설을 지반에 꽂아넣는 방식이다.


지난 11일 오후 군산항 현장에서 만난 한전 전력연구원의 이준신 부원장은 “컵을 거꾸로 세워 펌프로 그 안의 물을 잡아빼면 쑥 들어가며 박히는 식”이라고 석션 공법을 설명했다. 이 방식에선 “항타소음(바닷속에서 해머로 쇠말뚝을 두드릴 때 나는 소음)이 없고 부유사(떠도는 모래)도 생기지 않아 친환경적이고 공사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발전기 두 기 중 왼쪽에 자리잡은 2호기(유니슨 4.2㎿급 터빈 장착)는 한 가지 특징을 더 지니고 있다. 한전 전력연구원 주도로 개발한 ‘일괄설치 기술’을 활용한 것이란 점이다. 여기에는 한전 주문에 따라 특수제작된 선박인 일괄설치선(MMB)이 동원됐다. 항구 인근 육상에서 발전기 하부기초, 타워(지지 축), 상부의 터빈과 블레이드(회전날개)를 모두 조립한 뒤 발전기 전체 구조물을 들어 올려 바다로 옮긴 뒤 한번에 설치하는 기술이다. 일괄설치선 프로젝트에는 한국기계연구원(이송설치 안정성 평가기술), 티엔지(T&G)중공업(엠엠비 제작), 지노스(엠엠비 기본 설계)가 공동 참여했다.


바다에 나가 말뚝으로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타워를 세운 뒤 터빈을 결합하고 블레이드를 맞춰 넣는 일반적인 공법과 달리 100% 완전체를 바다에 들고 나가 퐁당 빠뜨려 단번에 세우는 방식이라 공사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한전 쪽은 강조한다. 기초 시설에 해당하는 높이 9~10m 대형 강관은 석션 작업에 따라 분당 2㎝씩 해저면에 서서히 박혀 10시간가량이면 고정 완료된다고 한다. 설치된 발전기를 사용 후에 해체하기 쉽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석션 펌프로 버킷에 물을 주입하면 기초 설비가 바닥에서 떨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일괄설치에 활용되는 특수선박은 군산항 4부두와 6부두 사이에 있는 다목적 부두에서 100m 남짓 떨어진 바다에 정박해 있다. 지난달 7일 진수됐으며, 이틀 뒤인 9일 처음으로 시공에 활용됐다. 그에 따른 결과물이 바로 남방파제 인근에 있는 ‘2호기’이다.


석션 공법과 함께 한전의 신개념 해상풍력 발전기술의 두 축을 이루는 일괄설치선에 올라 보기 위해선 6부두 쪽에서 통통배로 접근해 사다리를 타야 했다. 이 특수선박에는 거대한 A자 모양의 프레임 둘을 비스듬하게 맞붙여놓은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 설치돼 있다. 프레임에 여러 장치를 붙여 중량물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기중기(크레인) 구실을 하는 ‘리프팅 장치’다. 높이가 60~70m가량 된다고 하니 20층짜리 아파트 1개 동이 들어서 있는 셈이다.
리프팅 장치에는 거대한 갈고리 모양의 ‘훅’을 매단 굵직한 쇠사슬 네 가닥이 위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져 있다. 완전한 모양으로 조립된 중후장대한 풍력발전기를 통째로 들어 올리는 손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5㎿급 기준으로 조립 완료된 풍력발전기의 무게는 최대 1500톤, 석션 버킷 하단에서 발전기 윗단까지 높이는 140m, 블레이드 끝단까치 치면 200m가량에 이른다.


한전이 지난달 일괄설치 기술을 발표할 때 “세계 처음”이라고 강조한 것을 두고 에너지 관련 전문 기관 일각에선 “유럽에서 이미 개발된 기술이며, 한전의 언론 플레이”라고 평가 절하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또 석션 공법이라는 게 뻘밭인 서해에서나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이라 범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일괄설치선 내 회의실에서 마주 앉은 이준신 부원장은 “(스마트폰 윗부분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 보이며) 유럽에서 몇년 전 개발했다는 기술은 발전기를 이런 식으로 들어 올리는 것이라 다르다”고 말했다. 한전 기술은 발전기 무게중심의 위쪽을 집어 드는 게 아니라 아랫부분에서 받쳐 드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유럽식 기술에선 발전기의 흔들림이 덜해 안정성에선 유리한 반면, 엄청나게 거대한 크레인과 선박을 동원해야 한다는 게 약점이다. 기존 공법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한전 기술의 강약점은 유럽식과 정반대다. 한전은 리프팅 장치 윗부분의 세 곳에 집게 노릇을 하는 ‘클램프’를, 아랫단에 ‘서포팅 바’를 추가로 설치해 발전기를 들 때 취약해질 수 있는 안정성을 보완했다. 여기엔 고도의 동역학과 제어 기술이 적용됐다고 한전 쪽은 설명했다. 대형 리프팅 장치에는 철제 계단이 설치돼 있어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 클램프, 갈고리 모양의 훅, 서포팅 바가 설치된 모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석션 공법과 특수선박을 활용한 일괄설치 기술의 범용성 문제에 대해선 이 부원장도 인정한다고 말했다. 제주 지역이나 동해처럼 암반으로 이뤄진 해저면에선 활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다만, 국내에선 수심 등을 고려할 때 해상풍력발전기를 설치하기에 최적지는 서해 지역임을 고려해야 한다고 이 부원장은 설명했다. 국내외 할 것 없이 해상풍력의 보급이 육상풍력에 견줘 더디고 아직은 초기 단계라는 사정도 있다. 범용성 문제를 거론하기엔 이르다는 설명이다.


기존 공법에 견줘 공사 기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점 한편에선 기초의 안정성 문제가 거론되기도 한다. 바다에 퐁당 빠뜨려 한번에 설치하는 식이면, 구조적으로 불안하지 않겠느냐는 의구심이 나올 법하다.
한전 전력연구원 재생에너지연구실의 유무성 책임연구원(공학박사)은 “(기초를 이루는) 석션 버킷이 두꺼운 강관이고 삼각 구조(‘트라이포드’)로 설치되기 때문에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원통형 버킷의 두께는 22㎜ 수준이고, 지름 8m, 높이 9~10m에 이르며 이들 버킷은 20m가량 거리를 두고 삼발이 구조로 거치돼 기존 공법보다 더 높은 안정성을 띤다는 설명이다. 유 연구원은 “남방파제 근방에 있는 오른쪽 ‘1호기’(두산중공업 3㎿급 터빈 장착)가 2017년 석션 공법으로 설치돼 5년째에 이른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전 쪽은 재킷 기초의 기존 공법으로는 한 기당 설치 비용이 86억원, 공사 기간(분할 운송·설치)은 90일가량 걸리는 데 견줘 석션 기초의 일괄 운송·설치 방식에선 각각 49억원, 10일로 단축된다고 밝히고 있다. 공사 기간·비용을 줄일 수 있는데다 바다 환경에 악영향을 덜 끼친다는 점에서 풍력발전 확산의 최대 걸림돌로 꼽히는 ‘주민 수용성’ 문제(어민 반발)를 풀기에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방식으로 평가된다.


이런 장점이 당장 사업성·시장성 확보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한전 쪽은 설명한다. 해상풍력발전 산업의 생태계 특성 탓에 높은 경제성이 오히려 확장성을 제약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이준신 부원장은 설명한다. 공기 단축이 경제 전체에는 득이더라도 기존 공법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건설사 등 관련 기업들에는 일감의 축소를 뜻한다. 새로운 방식의 설치 기술이 현장에서 채택되고 확산되기까지는 여러 제도적 난관을 넘어서고 시일을 거쳐야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